[전업농신문=편집부] 지난 11월 11일은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이었다. 이날은 농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농업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제정됐다. 흙을 뜻하는 한자 ‘土土’를 풀어 쓰면 ‘十一十一’이 된다는 점에 착안, 11월 11일로 지정됐다.

‘농업인의 날’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수확의 기쁨과 풍성함에 즐거워야 할 시기인지만, 농촌에는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연초부터 계속된 농산물 가격 하락과 세 번의 가을 태풍 등 기상이변, 여기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의 전쟁까지 농업인들은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최근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결정해 농업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나라는 쌀, 마늘, 고추 등 민감품목에 300∼500%의 관세를 적용하고, 1조5천억원대의 농업보조금 지급이 가능했지만, 개도국 지위 포기로 쌀 관세율은 513%에서 200%대로, 보조금은 8천억원대로 각각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국내 농업기반이 위태로워 질 수밖에 없다.

더욱 농업인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이번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이 자동차 등 다른 산업분야의 협상우위를 위해 농업분야를 희생양으로 삼아 결정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농업계와 충분한 협의 없이 결정 했다는데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도 그동안 추진했던 방안을 개선하는데 그치는 등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지난 5일 정부가 발표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 선언도 국내 농업에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일본·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FTA(자유무역협정)라 할 수 있는 RCEP는 향후 진전도에 따라 농업강대국의 곡물류와 과채류, 과일류의 시장개방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의 잇따른 농산물 수입개방정책에 대한 농업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국내 28개 농업인단체로 구성된 한국농축산연합회가 지난 13일 여의도에서 농업인 총궐기대회를 열어 정부의 농업통상정책을 비판하고, 농정개혁을 촉구했다. 이날 대회에는 그동안 정부정책에 순응하면서 농업의 규모화와 전문화를 꾀해 왔던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도 동참해 주목을 끌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농업인의 날인 11일 지역별 농기계반납 시위를 시작으로 오는 30일 전국농민대회까지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에 대비한 사전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당장은 내년 농업 관련 예산 증액이다. 현재 국가전체 예산안은 전년 대비 약 9% 증가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예산안은 4.4%에 불과하고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98%로 낮다. 내년 농업관련 예산은 최소한 전체 예산의 5%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충분한 농업 예산이 확보돼야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공익형 직불제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고, 근본적인 농산물 가격 안정대책 수립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 한·중 FTA국회 비준을 앞두고 정부가 시장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농업·농촌을 지원하겠다며 만든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기업 자율로 2017년부터 1000억원씩 10년간 조성키로 했지만, 9월말까지 조성된 기금은 모두 624억원으로 3년 목표치의 20%수준에 불과하다. FTA의 이득을 피해 분야인 농업에 지원하는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제대로 된 농업회생대책이 만들어져 실행에 옮겨지고, 농촌에 풍년가가 울려 퍼지는 농업인의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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