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초지사료과 농업연구사 이세영

[전업농신문=편집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다. 잿빛 건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푸른 초원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드넓은 초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1981년 우리나라 초지의 총 면적은 약 9만 4천 헥타르(ha)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부실 초지면적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2018년에는 3만 3천 헥타르(ha) 정도로 줄었다.

초지가 단순히 가축의 먹이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질 좋은 풀사료를 공급하는 것과 더불어 동물의 복지와 건강을 위한 방목지로서의 기능도 있으며, 토양 침식과 홍수 방지, 산불확산 억제와 같은 환경보호 기능도 있다. 또한 관광·휴양·정서 함양과 같은 사회·문화적 기능도 갖추고 있다. 사람, 환경, 동물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축산의 핵심 요소인 초지는 조성과 관리의 어려움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초지의 공익적 기능들 또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초지 부실화의 대표적인 원인은 목초가 여름철 하고현상으로 인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하고현상은 더운 여름철에 식물의 자람이 멈추거나 심하면 고사하여 목초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 초지조성에 이용되는 목초인 오차드그라스, 톨 페스큐 등은 대부분 서늘한 기후에 잘 자라는 북방형 목초다. 북방형 목초가 자라기에 알맞은 온도는 15~21도(℃)로 평균 기온이 25도 이상이 되면 자람이 멈추는 등 생육 상태가 나빠진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목초는 여름철 고온과 장마, 겨울철 동해(凍害)와 가뭄까지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과거 104년 동안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2.4도(℃) 높아졌고, 집중 호우 발생이 빈번해지는 등 기후 변화를 보이고 있어 북방형 목초가 성장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초지를 조성하는 오차드그라스는 사료가치가 높고 재생력과 추위를 견디는 내한성이 강해 초지를 조성할 때 주 초종으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이 길어지면서 하고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아 초지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기후 적응력이 높은 톨 페스큐를 주 초종으로 초지 조성 조합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톨 페스큐는 다른 초종에 비해 토양 적응성과 영속성이 우수하고 추위, 고온, 습해 등의 재해 적응력이 높다. 즉, 반복되는 예취에도 지속적으로 높은 목초 피복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다른 목초(초종)에 비해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생산성의 변동 폭도 적은 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초지의 식생을 유지하게 되면 잡초의 침입으로 인한 부실초지 생성을 막을 수 있어 톨 페스큐 위주의 혼합 조합으로 초지를 조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초지관리에 더욱 유리하다. 또한 계속적인 방목에도 견딜 수 있는 높은 재생력으로 우수한 수량성을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외국에서 도입한 품종을 우리나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축적된 전통 육종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기후에 적합한 목초 신품종을 개발해 왔다. 국내에서 개발한 톨 페스큐 품종은 ‘그린마스터’를 시작으로 ‘푸르미’, ‘그린마스터 2호’, ‘그린마스터 3호’, ‘그린마스터 4호’가 있다.

초지를 조성할 때 수입종자보다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국내 품종들을 사용하면 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에 수월하게 초지를 관리할 수 있다. 앞으로 초지를 조성하는 지역과 환경에 따른 재배기술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우수한 초지 면적을 점차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초원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나아가 초지의 다양한 기능들이 빛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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