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농정연구센터 이사

한신대학교 교수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졌다. 살충제 사용이 적발된 산란계 농장의 절반 이상이 ‘식품안전관리 인증기준’(HACCP)?/span>을 획득한 곳으로 드러났다. 유통 과정에서 깨진 계란, 부패하거나 오염된 계란 등이 불법 거래돼 왔다고 지적되고 있다. 친환경 농장 인증과 관련한 ‘관피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식품관리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의 주기적 창궐은 일상사가 되었다. 사태가 터질 때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의약품안전처가 도마에 올랐지만 문제의 근원에 접근한 적이 없다. 이번에는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축산업 전반을 수술하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생산구조와 정부시스템 전체를 꾸준히 개혁해야 하는데, 새 정부의 문제의식과 능력이 검증대에 오른 셈이다.

식품문제는 정부주도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식품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매우 다양하고, 시스템 전체에 정부가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농축산물 생산자, 가공·유통기업들은 결집된 이해당사자로서 의견을 제시하는데, 식품 소비자의 이해관계는 분산되어 있다. 식품 관련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아우성이 터지지만, 생산자, 소비자, 정부 모두 식품시스템 전반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논의할 능력이 없다. 기존의 경로와 관성의 범위 내에서 대증적 처방에 집중하기 십상이다.

식품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은 결국은 사회의 전체적 수준 및 풍토와 관련이 있고, 진화 내지 개선의 방향은 생산자, 소비자,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소비자들이 시장구조의 방향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생산자와 정부가 관계되는 안전 대책은 그것대로 추진하되,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식생활 학습의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연구단체, 협동조합 등과 중앙 및 지방정부와 연계된 다양한 학습운동이 필요하다.

학습체계에 관해서 일례를 들어보자. 서울시에서는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권역별 학습장을 기반으로 대학들과의 연계과정을 덧붙여 ‘서울자유시민대학’(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운영되었으면 한다. 서울시에서 수직적 운영체계를 구축하기 보다는 대학이나 시민사회가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업무를 맡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시도에 ‘음식시민’들이 함께 학습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종덕 교수에 의하면, 음식시민(Food Citizen)이란 능동적 자세로 음식에 대해 성찰하고 음식의 생산·유통·소비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이다(『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 2012). 필자는 학습과 운동의 관점에서 음식시민의 관심을 좀 더 확장하고 개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생활하는 인간은 식생활을 포함한 건강한 삶 전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이러한 전체적 관점이 생산자나 정부에 대해 지속적인 변화를 추진하게 하는 압력이 될 것이다.

식품시스템의 변화 방향이 확정되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 때문에 학습내용은 다양한 방향을 탐색하는 열린 토론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의 경우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하나 실험해보고 있다. 종래에 있던 ‘한국 농업문제의 이해’라는 과목을 ‘식품·건강·사회’라는 제목으로 변경했다. 학생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질문은 “왜 먹는가?”, “어떤 식탁을 차릴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물으면 대부분 “그냥 살기 위해서 대강 먹는다”라고는 답하지는 않는다. 여러 대답이 가능하다는 점을 전제로 함께 배우려고 한다.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 건강문제와 식품문제를 구분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식품과 약이 다르고 같은 점도 따져봐야 한다. 건강과 질병에 대응하는 접근법의 차이에 따라 식품의 의미는 다양하게 논의해볼 수 있다.

둘째, 식품과 과학의 관계도 폭넓은 관점에서 공부가 필요하다. 식품과학의 공헌은 객관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영양학의 주장이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 비만과 다이어트를 보는 관점이 다양하다는 점, 식품의 역사가 식품에 대한 불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유전자변형식품(GMO)에 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점도 성찰해야 한다.

셋째, 질병과 식품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질병과 치유의 역사에서 식품의 위치는 변화해왔다.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질병이 된 암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발암물질이란 무엇인가, 암을 피하는 식생활이란 무엇인가 등을 토론해볼 수 있다.

넷째, 식품시스템의 문제이다. 식품 소비 패턴의 역사적 변화, 소비와 생산의 거리, 공장식 축산의 구조, 현대 식품시스템이 결과한 환경문제 등이 쟁점이다. 보통은 식품시스템에 경제적 측면만을 포함하여 논의하지만, 채식주의나 동물복지, 동물과 인간 종의 경계의 문제 등과 관은 윤리적 측면도 새롭게 부각되는 쟁점이다.

다섯째, 식품의 지역성에 관한 문제가 있다. 로컬푸드 운동의 현황과 함께 동아시아 푸드시스템 개념이 제기되는 상황도 함께 다룰 필요가 있다. 음식문화가 형성된 역사와 식품의 지역성의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지원 농업의 다양한 형태도 지역성 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다.

향후에도 식품 안전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사고를 전면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단번에 구축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진지한 자세로 사고에 대처함은 물론, 음식시민의 능력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원문 : 농정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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