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농신문=편집부] 세계 최대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지난 15일 참가국 정상들이 서명함에 따라 공식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따르면, RCEP 협정은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는 다자 FTA이며, 이들 국가는 전 세계에서 무역규모, 인구 및 총생산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번 RCEP 체결에 대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경제계는 우리의 경제영토를 동남아와 아세안지역으로 크게 넓힐 기회라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농업계는 또 경제를 볼모로 농업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처사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이번 RCEP 체결이 우리 농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참가국 중에는 중국을 비롯한 호주와 뉴질랜드 등 농업강국이 포함돼 있어 농산물 개방확대로 농업부문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농림축산식품부는 RCEP 시장개방 협상 결과, 우리 농산물의 민감성을 반영해 이미 체결된 FTA(한-중, 한-호주 등) 대비 추가 개방을 최소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핵심 민감품목인 쌀·고추·마늘·양파·사과 등과 수입액이 많은 민감품목을 양허제외로 보호했으며, 일부 추가 개방품목도 대부분 관세철폐 기간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또 수입식품에서 위생검역(SPS)과 관련한 중대한 부적격이 발생할 경우 수출국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등 수입식품의 안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 규정도 반영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수출 유망품목에 대한 상대측 시장개방을 요구해, 소주·막걸리(일본), 사과·배(인도네시아), 딸기(태국) 등의 품목에서 시장 접근성이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RCEP 체결로 농산물시장 개방 속도가 빨라지면서 농업부문의 타격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RCEP 체결에 따른 구체적 피해 예상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선 동남아 등지의 구아바·두리안·망고스틴·파파야 등의 열대과일 수입 개방으로 인한 국산 과일 소비대체로 국내 과수산업에 직·간접적이 피해가 전망되며, 중국산 녹용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인하·철폐돼 국내 양록 산업 경쟁력 약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RCEP 협정에서 적용키로 한 통합원산지 기준이 시행되면 식품가공 재료에 대한 수입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RCEP 참여국간 교역에서 역내 생산 원재료로 제조된 상품에 관세특혜를 주어 가격이 저렴한 식자재 사용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분야에 대해 제대로 된 영향평가가 없었음은 물론 농업계와 충분한 협의도 없이 RCEP 체결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세계 각국과의 잇따른 FTA 체결로 농산물 수입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농업은 침체일로를 걸어왔다. 더욱이 올해 발생한 코로나19와 함께 극심한 기상이변으로 식량안보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농업 추가개방에 대한 대책도 없이 RCEP를 체결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인도가 중국산 값싼 농산물이 들어올 경우 자국 농가 피해 등의 우려로 RCEP에 불참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RCEP 출범에 대비해 농산물 개방품목 확대에 의한 분야별·품목별 예상 피해를 세밀히 점검하고, 장단기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충분한 농업 관련 예산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농식품부가 밝혔지만, 국내 농업 분야에 RCEP의 영향평가를 추진하고, 결과에 따라 피해산업 분야에 대한 국내 보완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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