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득실 기자
구득실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드디어 내년부터 시행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5년 유통기한(Sell-by date) 표시제를 도입한 이래 현재까지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식품 등에 유통기한 또는 품질 유지기한으로 날짜를 표시하고 있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말한다.

지난해 8월 ‘식품 등의 표시·공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유통기한 제도는 도입 후 3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그 자리를 소비자 중심의 ‘소비기한(Use by date)’으로 바꿔 표기토록 했다.

2023년 1월 1일부터 식품에 표기되는 ‘유통기한’ 대신 소비 가능한 기간을 나타내는 ‘소비기한’이 적용된다. 다만 우유·치즈 등 냉장보관 기준개선 필요 품목은 8년 이내 적용이 유예된다. 이들 제품들은 2031년부터 소비기한이 표기된다.

지난 10여년 간 지지부진했던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면서 긍정의 목소리가 높다. 섭취가 가능함에도 버려지는 식품폐기물과 유통환경의 개선, 국제적 기준에 맞는 식품제도 등이 도입의 배경으로 꼽힌다.

소비기한이란 식품 등에 표시된 보관방법을 준수할 경우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뜻한다. 그동안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폐기시점으로 인식하거나 제품의 섭취 여부를 고민하는 등 혼란이 있었고, 충분히 섭취가 가능한 식품을 단지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하기 일쑤였다.

이로 인한 처리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하루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1만 4천톤에 달하며, 처리비용만도 연간 8천억 원에 이른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연간 약 20조 원(2018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또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호주 등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소비기한 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는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식품업계 현안부터 녹록지 않다. 식품업체에서는 제품별로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소비기한을 새로 정해야 하기에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식품업계의 실제 추진여부다. 관련업계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재고관리나 보관기간에 따른 비용추가 부담은 고스란히 업계가 짊어져야 해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다수 중소기업이 이러한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유통기한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거부감 해소 또한 문제다. 소비기한의 시행까지 5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정부는 유통현장의 관리 효율성 제고를 비롯해 당분간 기한 표기에 있어 유통기한을 병기하는 등의 제도보완 및 사전홍보·교육을 통해 소비자 혼란은 최소화해야 한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품 유형별로 ‘권장 소비기한’을 설정하기로 했다. 이는 영업자 등 소비기한 설정 시 참고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소비기한 표시제도 도입을 위한 기술적 지원을 하게 될 소비기한 연구센터도 지난 12일 개소했다. 센터는 올해 빵류, 떡류 등 50개 유형에 대한 권장 소비기한을 설정, 공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4년간 200개 유형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의무사항이지만 그 기한 설정은 영업자의 영역이다. 영업자 책임 하에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보증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기한 설정을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만큼 정부는 기업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강화할 수 있는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소비기한은 영업자 입장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되는 기한 표시이니 만큼 소비자는 식품별 보관방법을 잘 준수해야만 한다. 영업자 역시 제품 특성과 유통 환경 등을 세밀히 고려해 시행착오 없게 과학적이고 안전한 소비기한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소비기한이 과학적인 설정 실험 등을 통한 안전계수를 적용해 만들어진 만큼 보다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 식품의 새로운 기준으로 정착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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