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산림과학원 이오규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이오규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박사

한지는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앞선 문화 국가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소재이다.

우리나라는 16개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순위이며,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 중에서는 첫 번째이다.

그리고 그 16개 중 10개의 세계기록유산이 한지로 만들어진 것이니, 한지 없이는 우리의 우수한 기록문화를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지는 옛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생활소재였으며, 지금도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사용되고 있다.

옛날 겨울에는 천 속에 종이를 넣은 방한용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고, 기름먹인 종이는 비옷이나 우산으로 만들었으며 떡이나 지짐 등의 음식물 보관 용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지를 얇고 길게 자르고 꼬아서 실처럼 만든 후 이를 엮어서 옷을 짜거나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를 지승(紙繩)이라고 하는데 옻칠 등의 방수처리를 통해 각종 용기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한지는 부채 또는 지함(紙函, 종이 상자), 벽지, 창호지, 장판지 등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장례용 물품으로까지 이용하는 등 일상생활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지는 고문헌에 나타난 종류만 해도 종이의 용도, 제조 시 첨가물의 종류, 규격 등에 따라 200여 가지가 훨씬 넘는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방구나 화방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한지는 수입된 저가의 화학처리 원료를 사용하여 기계식으로 대량 생산하는 ‘기계한지’이거나 값싼 수입제품이다.

본래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닥나무류의 껍질을 섬유화하는 전처리과정이 필요한데, 기계한지는 우리나라에서 잿물을 사용해 전통방식으로 생산된 원료 가격보다 1/10가량 싸지만, 품질에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만일 조선시대에 강력한 화학처리 원료를 사용한 한지에 ‘훈민정음’이나 ‘직지’를 인쇄했다면,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며, 700년대에 인쇄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등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화학처리를 심하게 한 종이 원료는 쉽게 산화되기 때문이다.

한편, ‘한지’라는 용어는 1950년대 이후부터 사용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아마도 국호 ‘대한민국’의 약자인 ‘한국’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필자는 대한제국 시기였던 1908년 10월 3일 자 대한매일신보 2면 기사에서 ‘韓紙(한지)’라는 용어를 발견하여 보고한 바 있다. ‘한지’ 용어의 기초가 된 국호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이었던 것이다.

한지는 ‘고려지’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대단한 명성을 얻었고 조선시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왔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최근 이탈리아 등에서 자신들의 국보급 문화재를 한지로 복원하는 등 다시금 한지의 명성이 드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우수 문화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가 한지를 더 많이 연구하고 애용하여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유지하는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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