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종자원 종자검정연구센터장 유병천

국립종자원 종자검정연구센터 유병천 센터장

탄소 연대측정으로 약 770년 전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탄화된 종자가 한 꾸러미 나왔다.

이 종자는 재배를 위해 가지고 있던 종자로 판단되었고 심지어 활력이 있어 발아되는 종자도 있었다(문화재청).

또 고려시대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난파된 무역선이 2018년경 우리나라 인근 바다에서 발견되었고 여러 교역품 중 씨앗 포대가 나와 이를 유전자 분석해보니, 현재의 감과 비슷한 종자임을 확인하였다(국립종자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보면 기록이나 유물 등에서 여러 종류의 종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주된 산업이 농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리 새로운 사실은 아닐 것이다.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 가장 중요한 욕망이다. 먹는 것, 즉 음식의 많은 재료는 식물이고, 식물은 종자에서부터 시작된다.

770년 전 농부가 무덤에서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가져가고 싶어 했던 것이 종자였던 것처럼 예로부터 우리는 종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럼 인류의 생명과 직결되는 종자는 현재 어떻게 보관되고 있을까? 전쟁이나 지진 등 유사시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는 어디서 종자를 구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이러한 이유로 유전자원인 종자를 확보하고 보관하는 기관들이 있다. 크게 3곳이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농촌진흥청의 농업유전자원센터(현 씨앗 은행)와 산림종자 위주의 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 그리고 상업용으로 유통되는 모든 종자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 국립종자원이 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생태계가 파괴되면 일반 식물은 씨앗 은행에서, 산림은 시드볼트에서 종자를 꺼내어 복원하면 된다. 하지만 생태계가 복원된다 해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자연 상태의 식물과 인간이 영위하는 식물을 구분하였다. 생태계 복원의 중요성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가 되는 재배작물일 것이다.

국립종자원은 이처럼 인류의 먹거리를 위한 재료인 재배작물 유전자원을 모두 보관하고 있는 기관이다.

안전한 유전자원의 보관·관리를 위하여 2004년부터 1년에 두 차례 농진청의 씨앗은행과 품종보호 출원 및 국가품종목록 등재 품종을 일정부분 분산저장 해 왔으나, 이번에 새로 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와 상업용 종자를 분산저장 함으로써 재배작물의 보관을 한층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22년 첫 분산저장의 규모는 47종 1,227품종이며, 매년 품종보호권 등이 만료되는 종자를 위주로 시드볼트에 나누어 보관하고 점차 그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가을에 수확한 곡식이 바닥나고 초여름에 보리가 수확되기 전, 보릿고개라 불리던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요즘 피트니스 센터를 찾아가며 고되게 살을 빼는 시절을 지내고 있다. 먹는 것의 중요성과 그 재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생태계나 재배작물의 복원을 위하여 시드볼트(Seed Vault)가 열리는 날이 와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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